옷을 좋아해 의류학과에 갔지만 옷을 만드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공부가 너무 좋아 대학원에 갔지만 결국 그 길을 떠났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진을 찍을 때에는 이름을 숨기고 싶었다. 세 사람의 근로 이력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바라던 일과 실제로 해본 일 사이를 오간 시간이 담겨 있다.

「쓴만큼」의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3화에서는 소비를 뒷받침해온 근로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매거진B 박은성 편집장, 민음사 해외문학팀 유상훈 편집자, 코요태 멤버이자 포토그래퍼인 빽가(백성현)가 지금 하는 일을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오래 일하며 달라진 생각을 이야기했다.

읽기 안내

본 글은 출연자의 인터뷰와 답변서 내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박은성·유상훈·빽가가 영상과 서면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영상에 담기지 않은 답변도 함께 반영했습니다.

YouTube에서 근로소비자 3화 보기 ↗

지금 하는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빽가

1997년에 댄서로 시작했고, 2004년에 코요태에 합류했어요. 포토그래퍼로 데뷔한 건 2006년이고요. 처음에는 백댄서라고 불렸죠. 이후 JYP에서 어린 연습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러다 가수 오디션을 보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게 코요태였어요.

사진가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고, 사진은 고등학교 때부터 전공했어요. 코요태 활동을 할 때 음악방송 대기 시간이 길면 종민이 형을 따라 PC방에 가곤 했는데, 게임 말고 사진을 올리는 사람을 봤어요. 싸이월드였죠. 저도 찍어둔 사진이 많으니까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빽가라는 이름을 보고 사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싫었어요. 그래서 이름의 ‘백’을 숫자 100으로 바꿔 by100으로 올렸어요.

그 사진을 보고 보그 에디터에게 연락이 왔어요. 일반인 중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이었죠. 그 뒤에는 패션 사진을 찍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첫 촬영을 타블로 씨와 했어요. 이후 다른 잡지들과도 일하면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게 됐어요.

박은성

어릴 때부터 옷과 패션잡지를 좋아해서 의류학과에 갔어요. 패션 일을 하려면 그 전공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죠. 그런데 실기 수업을 듣고 금방 알았어요. 옷을 좋아하는 것과 만드는 건 다른 일이더라고요. 패턴을 만들거나 크로키를 하는 데에는 손재주가 없었어요.

졸업 후에는 엘르의 패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했어요. 이후 그 미디어회사의 인턴으로 여러 잡지를 두세 달씩 순환 근무했는데, 당연히 패션잡지에 남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영화잡지에서 보낸 두 달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선배들과 일하는 방식도 새로웠고,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죠. 결국 영화지 프리미어를 희망했고, 그곳에 정식 에디터로 들어갔어요.

프리미어가 폐간된 뒤에는 엘르로 돌아갔다가 까사리빙으로 옮겨 인테리어와 가구, 사람에 관한 기사를 만들었어요. 그다음 매거진B에 팀장으로 합류했고, 이후 편집장 역할을 이어받았어요. 한 분야만 따라온 경력은 아니지만, 지금 다양한 브랜드를 다룰 때 그 경험들이 도움이 돼요.

유상훈

저는 처음부터 큰 계획이 있지는 않았어요.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어문학을 복수 전공했는데, 공부가 너무 잘 맞았어요. 알고 싶고 읽고 싶은 것만 들여다보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였죠. 그런데 대학원은 제가 기대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경직된 분위기가 버거웠고,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결국 그 길을 떠났어요.

그다음에는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야 했죠. 패션잡지도 좋아했으니 유니클로에도 들어갔어요. 입사를 준비하고 교육을 받는 데 거의 반년을 들였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제 성향에 맞지 않더라고요. 치열한 서비스 현장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물욕은 출판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컸어요. 돈도 벌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죠. 그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감동하는 능력이에요. 동료인 김민경 편집자도 제가 한 말 중 그 표현을 좋아해요. 책을 읽고 감동하고, 그 좋은 점을 알아보는 능력을 쓸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출판사로 왔죠. 문학을 다루고 서울에 있는 민음사가 제게는 좋은 선택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이면 적은 월급도 괜찮았나요

박은성

어시스턴트 때는 정해진 월급이 아니라 일을 한 날에 따라 돈을 받았어요. 한 달에 촬영이 며칠 잡히는지도 일정하지 않았고요. 수입이 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이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으니까요.

다른 직업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경험을 일종의 보상으로 여기기도 했어요. 새로운 곳에 가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죠. 처음 몇 년은 그런 경험의 즐거움이 컸어요.

오히려 연봉과 현실 사이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 건 중간 연차에 접어들면서였어요. 일이 손에 익고, 처음처럼 모든 일에 온 힘을 쏟지 않아도 되면서요. 고생이 조금 줄어드니까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조건이 보이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과 생활의 조건을 따져보는 마음이 함께 생긴 거죠.

유상훈

출판사 월급이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이미 다른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이 얼마나 버는지도 알았고요. 그래도 제게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더 절실했어요. 친구들은 대기업에 가고, 의사인 누나의 수입도 보면서 돈벌이의 규모가 다르다는 걸 알고 선택한 일이에요. 맞지 않는 일을 해보니, 일을 맡기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괴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출판사마저 제게 맞지 않으면 더는 갈 곳이 없겠다는, 막다른 길에 선 듯한 절박함도 있었어요.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무대의 주인공과 촬영 스태프로 일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빽가

가수일 때와 포토그래퍼일 때 제 위치가 완전히 달라요. 제가 무대에 서는 사람일 때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움직여주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스태프의 입장이 되어보니까 그분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셨는지가 보였어요.

양쪽을 다 경험한 건 좋은 점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니까요. 반대로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도 더 잘 보이죠. 연예인으로만 활동했다면 겪지 않았을 일도 사진가로 일하면서 겪었어요. 그럴 때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사람을 싫어하고 싶지 않아도 감정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 힘들어요. 가수였다면 겪지 않았을 무시를 당해도, 사진가로 온 자리에서는 제가 사진가라는 생각으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무대에서는 관객에게 흥과 즐거움을 주는 주인공이고, 촬영장에서는 온전히 사진가가 되는 식이었죠. 그래서 저는 촬영장에 가면 먼저 인사하려고 해요. 누군가 한 명이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는지 아니까요.

회사를 나가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빽가

연예인이라는 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잖아요.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다른 일도 해봤어요. 그러다 보니 두 분은 지금 하는 일이 끝났을 때를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했어요.

박은성

밖에서 제 이름으로 일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경력이나 노하우가 있으니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상하게 그럴 때면 회사가 바빠지거나 조직 안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요. 그러면 제 미래에 관한 고민은 또 뒤로 가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과 규율이 있는 생활이 잘 맞아요. 스스로 모든 동기와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어요.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 일하면 개인이 쉽게 덤빌 수 없는 일도 규모의 힘으로 해낼 수 있잖아요. 아직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느껴요.

힘들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날에도, 다음 날이면 마음이 어느 정도 초기화되는 편이에요. 일을 위해 완전히 다른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고요. 일하는 제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것, 그게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이유 같아요. 다른 일을 하려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어요. 다른 직업에 대한 환상도 별로 없고요. 어떤 일을 하든 결국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규율이 있는 근로소득자의 생활도 해볼 만하다고 느꼈을 수 있겠죠.

유상훈

저는 제 일을 벌이고 운영하는 데 쓸 에너지가 별로 없어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데에도 오래 걸렸잖아요. 편집이라는 일이 그나마 제게 맞는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도 이 일을 이어가고 싶어요. 다른 일을 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크지 않고요.

잡지 에디터에게는 글을 쓰는 것 말고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요

박은성

에디터를 글을 쓰고 화보를 연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일을 조직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에 가까워요. 하나의 촬영에도 인터뷰이와 사진가, 매니지먼트, 스타일리스트, 헤어와 메이크업 담당자까지 여러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각자의 일정과 조건을 맞추고, 콘셉트를 공유하고, 변수가 생기면 해결해서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야 해요.

그런 프로젝트를 에디터 한 사람이 한 달에 서너 개, 많게는 대여섯 개씩 동시에 진행해요. 아이디어가 좋다는 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훈련을 계속하는 셈이죠.

에디터 출신들이 개인의 이름으로도 여러 일을 하는 데에는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사람들을 모아야 할지 파악하는 데 익숙하니까요. 글이나 말을 잘하는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일을 하며 저지른 실수 중 무엇이 가장 오래 남았나요

빽가

코요태에 들어가고 한 달도 안 됐을 때 생방송 무대를 펑크 낸 적이 있어요. 종민이 형과 같이 살 때였는데, 다음 날 오전 10시에 생방송이 있는데도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셨어요. 집에 와서 형을 깨우고, 형이 씻는 동안 앉아 있다가 잠들어버렸죠. 형은 저를 깨우지 않고 스케줄에 갔어요.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생방송 시작 시각을 넘긴 거예요. 전화를 했더니 짐을 싸서 나가라는 말을 들었고, TV를 켜보니 신지와 종민이 형 둘이 무대에 서 있었어요. 너무 무서웠죠. 형에게 사과했는데 “그냥 편하게 술 마셔”라는 말이 돌아왔어요. 형이 얼마나 화났을지 지금은 알겠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방송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박은성

업무 자체에서 생긴 실수는 대부분 만회할 수 있었거나 주변의 도움으로 크게 번지지 않았어요. 벌어진 일로 저나 다른 사람을 오래 책망하는 편도 아니고요.

오히려 오래 남는 건 관계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순간들이에요. 꼭 해야 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거나, 동료의 마음과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거나, 관계의 중요성을 놓쳤던 일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제 판단이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되죠.

이런 실수는 수습도 쉽지 않아요. 뒤늦게라도 솔직한 마음을 잘 전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오래 얽매이지 않고 털어내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유상훈

저에게는 책에 남은 오탈자가 큰 실수예요. 글을 오래 읽으면 글자 하나하나보다 문맥을 따라가게 되잖아요. 잘못된 글자가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맞게 읽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온 뒤에 발견하면 정말 괴로워요.

누군가 ‘최후의 교정은 독자가 본다’는 말을 해줘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적은 있어요. 그래도 상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최상의 품질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남아 있죠. 잘 팔리는 책이라면 다음 인쇄에서 고칠 기회라도 있는데, 다시 찍지 못하면 그 상태로 남으니까요. 매번 고비예요.

AI가 일을 바꾸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빽가

저도 AI를 쓰고 있어요. 틀린 답을 줄 때도 있지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아요. 가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뮤직비디오나 재킷 사진을 만드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잖아요. 실제로 그 장소에 가지 않아도 원하는 배경이나 모습을 표현할 수 있고요. 그런 가능성이 흥미로운 거죠.

반면 포토그래퍼로서는 다른 면이 있어요. AI로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사진가에게 맡기는 일이 줄어들 수 있으니까요. 사전 답변을 쓸 때 이미 제 사진 일에서도 그런 감소를 느끼고 있었어요. 같은 기술을 가수와 사진가라는 두 입장에서 다르게 보게 돼요.

유상훈

문학을 만드는 일에서는 사람의 창작과 번역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만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지난날의 책을 읽다 보면 빗나간 예언과 예측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거든요. 제가 가진 식견으로 미래를 단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지고요.

AI는 제가 하는 일도 바꿀 거예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우리 미래를 상상 이상의 곳으로 이끌겠죠. 제 눈에는 이미 어떤 일에서는 사람을 대체하거나 더 잘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아요. 아직 그 사실을 드러내놓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일 수도 있고요. 이런 변화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하는 태도 자체가 독서에서 얻은 혜택이기도 해요. 이미 발목까지 차오른 밀물을 발로 걷어찬다고 바닷물이 물러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밀물이 들어오는 때구나 하고, 그 안에서 제가 숨 쉴 방도를 찾아야겠죠. 어딘가에 제 쓸모가 있지 않을까요.

박은성

기술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보다 지금 제 일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말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요. 가까운 미래에도 변화가 클 수 있고 전문가들도 예측에 신중하니까요. 회사 차원에서도 기사 작성에는 AI를 쓰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기사 자체는 제 생각과 손으로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대신 글을 쓰기 전 자료를 찾거나, 쓴 뒤 오류를 확인하거나, 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외국어로 소통할 때도 유용하고요. 외국어 메일을 5~10분 만에 쓰는 식으로 실무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다만 확인을 맡겼다고 그 결과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

박은성·유상훈·빽가는 촬영 전 답변지에 직업을 선택하고 이어온 이유, 일하며 겪은 관계와 고민을 자세히 적었다. 영상의 대화에 이어 세 사람의 서면 답변을 더 읽어본다.

에디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구체적이 되었나요

박은성

중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패션을 좋아하니까 옷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러 잡지를 읽고, 그중 좋아하는 잡지를 고르고, 거기에 실린 콘텐츠를 통해 제 취향을 정리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알게 됐어요. 이미 만들어진 창작물 중 좋은 것을 고르고, 편집하고, 평가하고, 말을 얹는 일을 좋아한다는 거였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도 있었어요. 10대 때는 그런 확신이 가득했거든요.

대학생 때는 다음이나 싸이월드에 비공개 커뮤니티를 만들어두고 매 시즌 4대 패션 컬렉션 리뷰를 썼어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골라 짧은 기사를 쓰기도 했고요.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그걸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현직 에디터나 지망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도 진로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민음사TV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요

유상훈

백순도 PD가 민음사TV를 처음 만들 무렵, 편집자가 글을 교정해주는 콘텐츠를 찍었어요. 그런데 편집자의 입장에서 어떤 문장은 무조건 맞고 어떤 문장은 틀리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국내 문학도 그렇고, 해외문학은 원작자와 번역자의 문장, 그 선택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제가 입시 강사나 자기소개서 첨삭 선생님처럼 글을 이렇게 고치면 성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명확한 오역이 아니라면 여러 방향으로 다듬을 수 있고요. 단정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다 보니 그 촬영분은 공개되지 않았어요.

한참 뒤 정중원 작가의 『얼굴을 그리다』를 다루는 마케팅 회의 콘텐츠에 출연했어요. 정말 좋은 책이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 책을 알리고 싶다는 간절함이 출연으로 이어졌어요.

다만 얼굴이 알려졌다고 생활이 크게 바뀐 것은 없어요. 아직 출연료로 뭔가 대단한 것을 할 정도도 아니고요. 편집자가 이렇게 주목받는 시대가 올 줄은 몰랐어요. 예전에는 안나 윈투어 같은 큰 잡지의 편집장 정도만 스타라고 생각했죠. 독서가 드물어지는 시대라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해진 건가 싶기도 해요. 일 때문이 아니면 이렇게 많이 읽으며 살기 어려우니까요. 제가 스스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불러주시면 열심히 참여할 마음은 있어요.

지금까지의 경력을 조금 더 자세히 돌아본다면요

박은성

촬영 당시에는 직장 생활 22년 차로 알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나이도 경력도 세는 걸 멈췄거든요. 대학을 휴학하고 YTN에서 아르바이트 겸 인턴십으로 반년 정도 일했어요. TV 뉴스를 디지털 콘텐츠로 내보내던 부서였는데, 중간에 NHN과 전략 제휴를 맺으면서 출근지가 역삼동 스타타워에 있던 NHN 사무실로 바뀌었죠. 네이버 지식인이 막 알려지던 때였어요.

졸업 뒤 엘르에서 패션 어시스턴트로 1년, 그 미디어회사의 인턴으로 다시 1년을 보냈어요. 여러 잡지를 순환 근무한 뒤 프리미어에서 정식 에디터가 됐고, 폐간할 때까지 일했죠. 엘르로 돌아가서는 패션 피처를, 까사리빙에서는 리빙과 라이프스타일 피처를 다뤘어요. 매거진B에는 2012년 4월 팀장으로 들어왔고, 2017년 편집장 역할을 맡았어요. 촬영할 때 돌아보니 한 회사에 바위처럼 14년째 있었더라고요.

유상훈

성인이 된 뒤에도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어요. 대학에서는 철학과 문학에 빠져 공부만 했고, 대학원 시절에는 출판 일도 하게 됐죠. 그 사이 장교로 약 4년 복무했고, 이후 공공기관에서 잠시 일한 경험도 있어요.

다만 대학원은 대학과 달리 굉장히 경직돼 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겪은 인문대 대학원은 지원금이나 교직 자리가 부족했고, 생업이 걸린 사람들의 치열함이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죠. 많이 배운 사람이라면 점잖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졌고, 학문에 걸었던 마음도 내려놓게 됐어요.

유니클로에서는 스태프룸의 ‘완전실력주의’라는 표어가 기억에 남아요. 입사 준비와 초기 교육에 들인 반년 가까운 시간을 내려놓을 만큼 제게는 버거웠어요. 서비스직이 맞지 않는 제 성향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회사의 방식이 몹시 가혹하다고 느꼈죠. 그때의 불만이 일본 회사의 문화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번질 만큼 힘들었어요. 매장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던 점장의 모습도 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지금은 가끔 옷을 사지만, 한동안은 매장 쪽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피할 정도였어요. 제게 맞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그 경험 뒤에 강해졌어요.

빽가

돌아보면 아무것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요태, 사진, 캠핑처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최고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왔어요. 오래 알려진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를 코요태에서 찾는다면, 그저 신지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싶네요.

처음 댄서로 일할 때는 돈 욕심이나 사람들의 관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무대에서 춤추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고 거기서 엄청난 즐거움을 얻었죠. 힙합으로 시작했지만 여러 장르의 춤을 익히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어요.

전공을 고를 때의 확신과 실제 수업은 어떻게 달랐나요

박은성

의류학을 전공하면서 환경생명디자인을 복수 전공했어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디터나 바이어가 되고 싶었고, 그러려면 의류학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모님 조언도 듣지 않았죠.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듣고는 후회했어요. 재봉틀을 쓰거나 평면·입체 패턴을 만들고 신체 크로키를 하는 실기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반대로 이론 수업은 패션 콘텐츠를 워낙 많이 봐온 제게 너무 기초적으로 느껴졌고요. 좋아하는 분야와 전공 수업이 맞는지는 별개의 일이었어요.

동기 중에는 다른 과를 복수 전공하거나 금융권과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꾸는 사람도 많았어요. 당시 제 눈에는 패션 디자인 현장에서는 오히려 미대 출신이 많이 활약하는 것 같았죠. 의류학과에서 뛰어난 디자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드물게 보였고요.

편집매장의 패션 바이어도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에디터는 패션뿐 아니라 역사, 문화, 사회의 흐름을 보는 시각까지 직접 쓸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서 둘 사이에서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유상훈

처음부터 큰뜻이 있어 동양철학을 고른 건 아니에요.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간다’고 하던 시기에 수시로 합격했고, 수능 준비를 피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어요. 어릴 때 서예로 익힌 한자 실력을 살리기에는 동양철학이 괜찮은 선택이었죠.

성리학부터 중국 근현대 사상까지 흥미로웠고, 그중에서는 양명학이 저와 좀 맞는다고 느꼈어요. 이후 문학에 빠지고 뒤라스의 언어를 공부하고 싶어 프랑스어문학을 복수 전공했어요. 진로를 생각하면 스스로 어려운 길을 고른 것 같지만, 전공 자체는 너무 잘 맞았어요.

당시에는 대기업 공채가 있었고 친구들은 대체로 좋은 직장으로 갔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남는 선택을 한 사람은 저를 포함해 한두 명 정도였죠. 저도 출판사 준비와 함께 신문기자를 지망했어요. 김민경 편집자와 신문사 선후배로 만났을 수도 있겠네요.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매체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 오래된 매체인 책이 더 생명력 있게 느껴지거든요. 운명처럼 이쪽으로 흘러온 셈이에요.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없을 때도 기사를 쓸 수 있나요

박은성

그 간극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긍정적인 동력으로 바꿔온 것 같아요. 쉽게 살 수 없을 만큼 비싸기 때문에 더 동경하고, 그 대상에 대한 환상을 잡지의 문법으로 풀어낼 수도 있죠.

독자 대부분도 비슷할 거예요. 갖고 싶다고 모두 가질 수는 없잖아요. 잡지가 만드는 이미지와 관점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 꿈꾸는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잡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면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요.

여러 분야의 잡지에서 일한 경험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나요

박은성

한쪽 시각으로만 대상을 보지 않게 됐어요. 비주얼과 텍스트, 상업성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감각도 익혔고요. 매거진B에서는 패션이나 뷰티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엔터테인먼트, 여행과 도시까지 매번 다른 분야를 다루잖아요. 낯선 영역에 빨리 들어가 핵심을 파악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데 여러 매체를 거친 경험이 도움이 돼요.

반대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패션 에디터만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죠. 지금만큼 넓은 영역을 다루지는 못해도, 제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시각과 스타일을 가진 사람인지 더 선명하게 떠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해외문학 편집을 처음부터 선택했던 건가요

유상훈

처음 민음사에 들어갈 때는 논픽션팀이었어요. 사실 논픽션 편집자를 뽑는다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지원해서 면접 자리에서야 알았어요. 민음사에서 논픽션도 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은 절박했는데, 정작 지원하는 자리를 그렇게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완성된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일이고,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시대에 독자에게 닿게 하는 일도 별개의 세계예요. 재미가 고통으로 바뀌고 또 뒤집히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이 있죠. 그래도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 계기는 대개 사람이에요. 일 자체가 잘못한 것은 아니더라고요.

여성 동료가 많은 회사에서 남성 편집자로 일하는 건 어떤가요

유상훈

성별만으로 어려움을 말하기는 힘들어요. 민음사TV를 보고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동료들은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특이한 면이 있고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각자 자기만의 강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아주 세심한 편도 아니라 대체로 그러려니 하고 지내요. 예전에는 감정적으로 크게 반응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려놓으려고 하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인 것 같아요.

월급을 받는 생활과 자기 사업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유상훈

제 성향에는 투자나 사업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성향이라고 느끼는 외할아버지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 사업을 하다 크게 실패하신 일도 떠올랐고요. 돈 무서운 줄 모르는 제가 사업을 한다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죠. 부모님도 다른 일은 많이 말리지 않으셨지만 투자와 사업만큼은 일찍부터 만류하셨어요.

월급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많이 버는 사람도 더 벌고 싶어 하더라고요. 소득이 커지면 자기도 모르게 생활의 규모도 커져서, 벌어도 돈이 없다는 말을 해요. 첫 월급 때 느낀 제 비애감도 제 소득과 생활의 규모에서 생긴 것이겠죠.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감정인 것 같아요.

빽가

직장인은 보수가 정해진 경우가 많아서 소비와 저축을 체계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보여요. 대신 자기 삶을 모두 자기 선택대로 운영하기는 어렵겠죠. 회사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규칙과 지시에 맞춰야 하는 점은 답답할 것 같아요.

저도 사업을 하면서 여러 사람과 부딪히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어요. 사업가로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때도,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때도 있었죠. 그 모든 경험에는 돈보다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지쳤던 것 같아요. 지금은 코요태와 사진, 캠핑처럼 오래 해온 일에서 이어지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예전처럼 누군가와 크게 부딪힐 일은 줄었고요. 제게 사업이 남긴 것은 배움과 교훈이에요.

이름이 알려진 채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빽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요. 칭찬은 감사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 칭찬과 비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죠. 잘못된 정보나 오해 때문에 비난받을 때도 있는데 일일이 해명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20년 넘게 겪어서 굳은살처럼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은 많이 아프고 힘들어요.

사진을 할 때도 보그 에디터의 연락을 받고 데뷔했는데, 제 사진을 사진 자체로 보지 않고 인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빽가나 백성현이라는 이름 대신 by100으로 꽤 오래 저를 숨기고 일했죠. 제 사진만으로 보그에 데뷔한 일과 2012년 아시아인 최초로 라이카 카메라의 모델이 된 일은 기억에 남는 성취예요.

프리랜서로 오래 일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빽가

제 주변 프리랜서는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브랜드 매니저, 댄서처럼 트렌드를 따라가며 매일 경쟁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그런 압박을 견디고 있죠. 반대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면 자기 분야에서 꽤 오래 일할 수 있어요.

역량이나 기술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인맥도 큰 역할을 해요. 화보 촬영장에는 사진,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 편집 각 분야의 어시스턴트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자주 만나고 같이 성장하면서 좋은 동료가 돼요. 나중에 각자 실장이 되면 서로 일을 맡기거나 함께할 수 있죠. 실제로 그런 경우도 꽤 봤어요.

저는 자존심이 너무 강하거나, 정확한 시급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과 부당하게 느껴지는 대우를 견디기 어렵다면 프리랜서를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겪어온 현장에서는 사람 사이의 유연함이 필요했고, 큰일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거든요.

선택하기 전에 많이 고민했으면 해요. 힘들어도 버텨서 잘해냈다는 맛을 느껴보되, 정말 맞지 않는다면 빨리 그만두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선택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남의 돈을 버는 일은 어느 쪽이든 쉽지 않아요.

두 동료가 프리랜서가 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빽가

두 분 성향을 보고 나니, 지금의 캐릭터로도 충분히 기본은 하실 것 같아요. 다만 직설적으로 한마디씩 보태자면 은성 님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욕심과 허영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상훈 님은 부유하게 자라셨으니 상대방의 눈높이에 조금 더 맞춰 대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두 분께 드리는 제 개인적인 조언이에요.

힘든 날을 넘기게 해준 소비도 있나요

박은성

고가의 소비로는 주얼리와 신발이 많았어요. 특히 스카프에 유독 마음이 가요. 에르메스 스카프를 좋아하는데, 제 기준에서는 비교적 부담을 덜 느끼는 가격으로 작은 예술 작품을 고르는 듯해서 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작은 소비로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있어요. 사전 답변을 쓸 무렵에는 밴 르윈도 좋아했고요. 물건의 크기나 가격은 작을 수 있어도 기분을 바꿔주는 효과까지 작은 건 아니에요.

육아와 돌봄을 병행하는 여성 동료들의 커리어는 어떻게 보였나요

박은성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잡지 일은 시간을 일정하게 통제하기 어렵거든요. 갑자기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출장도 잦아서,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동기와 후배를 많이 봤어요.

혼자 시간을 더 들여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나마 나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에디터는 협업과 조율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일정과 함께 움직여야 하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도 많아서 일의 우선순위를 쉽게 낮추지 못한 채 육아까지 병행하다 괴로워하는 모습도 봤어요.

이 업계의 장점이라면 경력에 공백이 생겨도 돌아오는 문턱이 아주 높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쉬는 동안에도 관심을 놓지 않고 업계와 연결을 이어가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만약 제가 결혼했다면 어땠겠느냐고 물으면,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애초에 이 일의 패턴과 성질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언젠가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나요

박은성

업의 성격을 아예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저는 사람을 직접 대하고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일에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 서비스업에 가까운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소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빽가

외국의 해변에서 태닝하고 맥주 마시면서 지내고 싶어요. 그렇게 인생을 즐겨보고 싶죠.

박은성

음악에 관해서는 아직 풀지 못한 욕심이 있어요. 패션만큼 음악을 좋아했고, 음반사나 음악 콘텐츠를 다루는 곳에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매거진B를 만들며 애플뮤직 에디터를 만났을 때도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부러웠어요.

경제적인 조건에서 자유롭다면 좋은 공간에서 좋은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취향을 나누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꼭 거창한 형태일 필요는 없어요. 친구들을 불러 함께 음악을 듣는 공간이어도 좋겠죠.

유상훈

남프랑스나 토스카나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내고 싶어요. 와이너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서 느긋하게 책이나 읽으며 살고 싶어요.

나에게 근로란 무엇인가요

유상훈

발견이에요. 세상에 있는 좋은 책을 찾아 우리말로 소개하는 일이잖아요. 잘 알려진 언어의 문학뿐 아니라 태국어나 아랍어처럼 제가 평소 익숙하게 접하지 못한 언어의 작품도 만나게 되고요.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읽다 보면 결국 저 자신도 발견하게 돼요.

박은성

저에게 근로는 근로예요. 이 일을 좋아하고 오래 해왔지만, 일이 저의 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해요. 중요하게 여기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빽가

희로애락이요.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일이 다 있잖아요. 그걸 하나씩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언젠가 일을 마무리하는 때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고 싶어요.

세 사람이 고른 근로의 이름은 달랐다. 발견, 근로, 희로애락.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고, 다음 날에도 이어갈 이유를 찾았다. 그 시간이 소비를 가능하게 했고, 각자의 삶을 만들었다.

편집 안내

이 글은 「근로소비자」 3화의 영상 대화에 박은성·유상훈·빽가의 사전 답변을 더한 확장 인터뷰입니다. 본문 답변을 보강하고, 영상에 담기지 않은 별도 사례와 질문은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에 모았습니다. 문장은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속기록은 아닙니다.

채널 소개

「쓴만큼」은 돈과 시간을 쓴 만큼 그 사람이 보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채널입니다.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소비와 삶을 이야기합니다.

제작: 마크비전(MarqVision) · 확장 인터뷰의 편집 방식

← 근로소비자 전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