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헌책방에서 사 모은 패션 잡지, 용돈과 세뱃돈을 모아 산 운동화, 일본까지 가서 구한 애니메이션. 지금 좋아하는 것들의 시작을 더듬으면, 아직 스스로 돈을 벌기 전의 작은 장면들이 나온다. 무엇을 갖고 싶었는지뿐 아니라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어디까지 갔는지에도 그때의 내가 남아 있다.
「쓴만큼」의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회에서는 매거진B 박은성 편집장, 민음사 해외문학팀 유상훈 편집자, 코요태 멤버이자 포토그래퍼인 빽가(백성현)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같은 시대를 지나왔지만 누구는 패션 잡지에, 누구는 일본 음악에, 누구는 춤과 옷에 마음을 빼앗겼다. 세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첫 소비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본 글은 출연자의 인터뷰와 답변서 내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박은성·유상훈·빽가가 영상과 서면으로 들려준 이야기를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영상에 담기지 않은 답변도 함께 반영했습니다.
10대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요
힙합 음악을 듣고, 패션 잡지를 보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변에 전파하느라 하루가 모자랐던 학생이었어요. 처음에는 엘르, 보그, 바자 같은 잡지를 모으다가 미국판, 이탈리아판, 프랑스판까지 찾아 읽기 시작했죠.
동대문 헌책방 거리에는 외국 패션 잡지의 중고본을 파는 곳들이 있었어요. 좋은 게 들어오면 먼저 사야 하니까 친구와 거의 업자처럼 드나들었어요. 검은 봉지에 잡지를 잔뜩 넣어 돌아오는 식이었죠. 음악도 마찬가지였어요. 혼자 좋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계속 들려주고 제 편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물욕은 훨씬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말씀으로는 제가 네다섯 살 때부터 쓸 물건을 직접 골라야 했대요. 백화점에서 보내오는 명절 카탈로그를 동화책처럼 펴놓고 계속 봤다고 해요. 옷만 보는 것도 아니고 고기 세트까지 손가락으로 짚었다니, 부모님이 너는 잡지를 만들려고 태어났나 보다 하실 만하죠.
저는 비교적 활달한 누나와 달리 매사에 의욕이 없는 편이었어요.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딱히 없고, 늘 누워 있어서 할머니가 걱정하실 정도였죠. 뭔가를 사려면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부딪혀야 하는데, 그 일 자체가 부담스러웠어요.
그렇다고 좋아하는 게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누나와 만화 비디오를 빌려 보거나 어머니가 빌려 온 해외 영화를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어요. J-POP과 일본 애니메이션도 좋아했고요.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무척 좋아해서 전집을 하나둘 사 모았어요. 제 독서 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춤과 사진을 사랑하고, 옷도 좋아하던 소년이었어요. 어른이 되면 화장실이 집 안에 있고 매일 치킨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은 부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어릴 때부터 옷과 신발을 사고 싶었어요. 이태원에서 자라다 보니 이미테이션을 접하기도 쉬웠지만, 저는 돈을 모아서라도 진짜를 사고 싶었거든요.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갖고 싶은 걸 사려면 제가 돈을 벌어야 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돌렸고, 나중에는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옷과 신발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에서는 은성 님과 비슷한 것 같아요.
처음으로 내 돈을 쓰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초등학생 때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이 그려진 책받침이나 브로마이드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뉴키즈 온더블럭, 장국영을 비롯한 중화권 연예인들이요. 팬심이 생기니까 소비도 따라왔던 거죠. 좋아하는 얼굴에 끌려 물건을 사기 시작한 셈이에요. 지금 아이돌 포토카드를 모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주로 부모님이나 외가에서 받은 용돈으로 샀어요. 학업에 정진하려면 영양 보충이 필요하다는 핑계도 댔고요.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이태원 청화아파트에서 신문 115부를 돌렸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M16 비비탄총을 샀죠. 친구들이 5천 원짜리 총을 살 때 저는 1만 5천 원짜리를 산 거예요. 그때 제게는 아주 큰 소비였어요.
갖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돈을 벌어서 사는 경험을 일찍 한 셈이죠. 나중에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용돈만 기다리기보다는, 아르바이트해서 사고 싶은 걸 사는 쪽이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앨범을 샀던 기억이 나요. 부모님과 교보문고에 갔던 추억도 있고요. 그때는 소격동에 살아서 교보문고까지 걸어갈 수 있었고, 집 앞에서 104번 버스를 타면 명동에도 금방 닿았어요. 미국 국적의 동갑내기 사촌이 팝이나 대중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조금 부럽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뭔가를 사려고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옷 하나를 사려 해도 지하상가나 명동, 동대문까지 몸소 찾아가야 했잖아요. 그런 수고를 할 만큼 갖고 싶은 것이 많지는 않았어요. 검소했다기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귀찮았던 쪽에 가까워요.
그 시절에는 왜 신발이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중학생 때 이태원에 시스타 하우스라는 가게가 있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편집숍인데 오리지널 제품을 팔았죠. 거기서 본 나이키 에어포스 1이 너무 갖고 싶었어요. 당시 댄서들이 신는 모습도 멋있었고요.
그래서 1년 계획을 짰어요. 용돈과 세뱃돈을 모아서 사기로 한 거예요. 중학교 2학년 때 그렇게 25만 원을 모아 산 신발은 나이키 에어포스 1 캔버스 하이였어요. 당시에는 정말 큰돈이었고, 학교에서 그 신발의 오리지널을 신은 사람은 저 하나였죠. 학교에 신고 가서 자랑했는데, 선배들에게 불려 갔어요. 그때는 새 신발을 밟는 걸 신고식이라고 했거든요. 가죽도 아닌 캔버스 신발을 밟히고, 맞기까지 했어요. 선배도 가짜를 신는데 후배가 진짜를 신었다는 이유였어요. 힘들게 산 신발이라 더 속상했죠. 그 신발은 지금도 집에 있어요.
저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좀 튀고 싶었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걸 골라 신고 갔더니 선배 언니들이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냥 마음에 들어서 산 건데 설명할 말이 없는 거예요.
학창 시절에 누군가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 신발이었어요. LA기어 농구화부터 무크나 미소페의 단화, 닥터마틴, 폴로 운동화 같은 것들로 이어졌죠. 머리끈이나 머리띠도 작은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물건이었고요.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거의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어요. 소풍 가는 날에도 교복을 입고 갈 정도로 무신경했죠. 보다 못한 친구가 저를 안양 지하상가에 데려가서 노란색 스웨이드 부츠를 같이 골라줬어요.
저라면 무서워서 부르는 값을 그대로 냈을 텐데, 친구가 현란하게 흥정하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다시는 못 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쇼핑을 하려면 이런 능력까지 필요하구나 싶었던 거죠. 어머니나 할머니를 따라 백화점에 가면 흥정할 필요가 없으니 그쪽이 훨씬 편했어요. 그렇게 산 옷은 몸이 자라 안 맞을 때까지 입었고요.
간절히 원해서 샀는데 실망한 적도 있나요
대체로 제 소비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후회도 잘 안 하고요. 그런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산 나이키 모자는 기억나요. 네온 옐로 컬러에 ‘Flight’가 필기체로 쓰인 야구 모자였는데, 당시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도 좋아하던 때라 너무 갖고 싶었죠.
어렵게 구해서 써봤는데, 너무 안 어울리는 거예요. 제가 상상한 모습과 달리 너무 어린아이처럼 보였어요. 물건에 실망한 건 아니었어요. 그 모자가 안 어울리는 제 자신에게 실망한 거죠.
저는 원래 간절히 원한 게 많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적었어요. 실망은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생기잖아요. 그런데 대만 가족 여행에서 옥으로 만든 사자상을 샀던 일은 떠올라요.
단체 여행 중에 쇼핑하는 곳에 들렀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걸 사는 거예요. 평소에는 갖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물건인데, 그 순간에는 집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어머니를 졸라서 결국 샀죠. 막상 집에 와서 보니 쓸 데도 없고, 제가 원했던 물건도 아니더라고요.
내가 원해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남이 사니까 따라 사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때가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필요나 쓰임이 아니라 가격만 소비의 이유가 될 때도 비슷한 일을 겪어요.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면 결국 쓸데없는 물건이 남는 거죠.
누구를 닮고 싶었고, 어떤 세계를 동경했나요
패션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대학생이던 사촌 언니들의 영향이 있었어요. 형제자매가 없어서 그런 언니들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멋있는 학교 선배 언니들도 있었고요. 누군가를 따라 한다기보다 동경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제가 10대를 보낸 시기는 음식, 음악, 영화, 패션을 통틀어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이 컸어요. 패션 잡지와 흑인 음악 CD, AFKN 라디오, MTV와 채널V를 많이 접했죠. 미국 서부에서 태어난 교포 연예인들도 좋아했고요.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상훈 님과는 영향을 받은 문화가 꽤 다르다는 게 재미있어요.
저는 콘텐츠에 대한 욕망이 컸어요.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는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호기심을 더 자극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바로 스트리밍으로 듣거나 내려받을 수 없으니, 듣고 싶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음반과 영상을 사게 만들었죠.
스피드를 비롯해 아무로 나미에, 글로브, TRF 같은 음악을 좋아했어요. 특히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싱한 가수들을 좋아했죠. 수입 음반을 구하러 강변역이나 신천역에 가기도 하고, 일본에 가서 음반이나 애니메이션 LD를 사 오기도 했어요. 옷에는 별 관심이 없던 제가 이런 것에는 움직였던 거예요.
저는 누가 샀다고 하면 따라 사고 싶어지는 쪽은 아니었어요. 내가 누구를 따라 한다는 느낌이 싫었거든요. 차라리 누가 저를 따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밥을 굶더라도 다른 데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았어요. 아무리 갖고 싶어도 이미테이션을 입지는 않겠다는 기준도 있었고요. 춤을 추면서 멋있다고 느끼는 옷과 신발은 있었지만, 주변 사람이 산 걸 그대로 사는 소비는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여행은 무엇을 남겼나요
어머니는 교사셨는데, 다른 데 소비를 많이 하기보다 돈을 모아서 방학에 저희를 해외로 데려가셨어요. 집에만 있고 의욕도 별로 없던 제게는 그 경험이 컸어요. 영화에서 보며 짐작만 하던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실제로 뒤섞여 있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처음 갔던 곳은 홍콩이었어요. 부모님이 홍콩 영화와 무협 영화를 좋아하셔서, 영화 속에서 보던 곳에 가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제게는 정말 별천지였어요. 맥도날드에서 처음 먹은 감자튀김과 딤섬, 처음 영어를 말해 보던 순간도 기억나요. 집에만 있으면 이런 걸 모른다는 자극을 받았죠.
그때 생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제게 많은 동력이 됐어요. 당시에는 가기 싫다고 징징거렸을 수도 있는데, 어머니가 데려가 주셔서 경험한 것들이 남아 있는 거죠.
저도 초등학생 때 미국에 갔어요. 디즈니랜드에 데려가 주신다고 했는데, 거기는 못 가고 이모 집 근처에서 여행했죠. 그런데 저는 그때 기억이 거의 없어요. 상훈 님이 어릴 때의 여행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게 신기했어요.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누구에게 무엇이 남는지는 다른 것 같아요.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취향은 영상에서 나눈 대화 바깥에도 남아 있다. 박은성·유상훈·빽가가 사전 답변에 적어준 물건과 기억을 더 읽어본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물건이 있나요
고등학교 때 랄프로렌에서 산 가죽 다이어리가 기억나요. 학생이 무슨 대단한 스케줄이 있었다고 캘린더 칸이 그렇게 빼곡한지, 지금 보면 웃겨요.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요. 낯뜨거운 스티커 사진들과 적어도 끝이 없는 위시리스트, 친한 친구들의 삐삐 번호가 들어 있죠.
물건 말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음악도 떠올라요. 공테이프에 좋아하는 곡을 녹음해서 믹스테이프를 만들었거든요. 음악 취향이 같으면 친구와 급격하게 가까워지곤 했어요.
저는 「에반게리온」과 「소녀혁명 우테나」를 무척 좋아했어요. 「에반게리온」은 그래도 비교적 구하기 쉬웠는데, 「소녀혁명 우테나」는 정말 구할 수가 없어서 일본까지 가서 LD로 전편을 구했어요. 39화의 모든 에피소드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립박수를 쳤죠. 그 희열이 아직도 기억나요.
고등학교 때는 CD를 구워 주는 게 유행이기도 했어요. 제가 가진 음반에서 음악을 골라, 당시 유행하던 컴필레이션 음반처럼 만들어 친구에게 주곤 했어요. 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물건을 사는 일과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 같이 떠오르네요.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취향도 있나요
외할아버지께서 늘 좋은 물건, 잘 만든 물건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저의 소비 성향은 대체로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씀을 듣고 자란 영향도 있었겠죠.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옷차림과 물건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샤넬이나 장 파투의 향수도 기억나요. 그때부터 향기라는 감각에 조금씩 눈을 뜬 것 같아요.
저희는 3대가 함께 사는 집이어서 조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할아버지가 사놓으신 세계명화전집을 보며 미술에 관심을 갖기도 했고,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당시 집 앞에는 옛 중앙청 건물을 쓰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어서 화려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던 불교 유물들을 보러 다니는 게 즐거웠죠. 박물관에서 우스꽝스러운 토우 모조품을 사 모은 기억도 있어요. 초등학생 때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미술에 더 빠져들었고요. 책 읽기에는 별 관심이 없던 아이가 그림과 유물은 좋아했던 거죠.
일본 문화와 가까워진 데에는 서예 학원에서 배운 한자도 도움이 됐어요. 일본어를 익히고 J-POP과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도 좋아했죠.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에는 할머니나 어머니와 일본에 가서 음반이나 LD를 사 오곤 했어요.
돈을 벌면 물건 말고 해보고 싶었던 일도 있었나요
독립이요. 사춘기에는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벼룩시장」 신문의 매물 정보에 밑줄까지 쳤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마음이 안정됐고, 아주 오랫동안 독립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열심히 밑줄을 치던 시기가 잠깐 있었던 거죠.
저는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어요. 여행을 가는 것과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건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당시에는 정말 버킷리스트였어요. 다만 집에 누워 있는 걸 좋아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어 했으니, 모순적이면서도 간절한 소망이었죠. 돈을 번 뒤에도 막상 실행하려면 귀찮아져서, 결국 이루지 못한 소망으로 남았어요.
용돈과 스스로 번 돈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제가 10대였을 때는 학생 아르바이트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어요. 사실 아르바이트가 필요할 정도로 씀씀이가 컸는데, 부모님이나 외가에서 받은 용돈으로 해결했죠. 학업을 위해 잘 먹어야 한다는 핑계까지 동원하면서요.
어릴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걸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벌겠다는 도전 정신도 부족했죠. 사전 답변을 쓰기 얼마 전 지인의 가게를 돕느라 보통의 시급을 받고 일해봤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어릴 때 그렇게 일했다면 금세 지쳐서 갖고 싶던 것도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께 많은 것을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신문배달로 처음 돈을 벌었고, 그 뒤에는 용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백댄서 일을 시작한 뒤로는 용돈을 받지 않았어요. 갖고 싶은 것을 스스로 벌어서 사는 생활이 그때부터 이어진 거죠.
잡지와 음반 말고 자주 샀던 것은 무엇인가요
카세트테이프와 CD, 보그·바자·엘르 같은 패션잡지뿐 아니라 TV가이드, 뮤직라이프, 포토뮤직 같은 연예잡지도 많이 샀어요. 게스 천가방과 머리끈, 사쿠라의 젤리롤 펜도 기억나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스티커 사진을 찍는 데에도 돈을 썼죠. 스티커 사진은 학교 앞에서 등교 전에 거의 매일 찍었어요.
저도 자주 사던 건 옷, 카세트테이프, CD였어요.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옷과 신발, 가방에 신경을 쓰기도 했죠. 힙합이 유행하던 때라 누구보다 크게 입고 싶었어요. 320mm 신발, 44인치 바지, 3XL 옷을 고를 정도였어요.
그 물건들을 사러 어디까지 다녔나요
초등학생 때 구반포 주공아파트 상가에는 보세옷집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곳이 쇼핑 거리였다는 게 새삼스럽죠. 삼풍백화점에도 자주 갔고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문정동 상설할인매장 거리, 압구정 로데오거리, 동대문 밀리오레와 제일평화시장을 다녔어요.
잡지는 동대문 헌책방 거리뿐 아니라 명동 중국대사관 앞의 해외서적 전문 서점에서도 샀어요. 해외 음반을 구하려고 압구정동 상아레코드나 신나라레코드까지 가기도 했죠. 잡지를 오리고 잘라 다이어리와 스크랩북을 꾸미는 일이 다시 다음 소비의 욕구를 자극했어요.
친구들을 따라 지하상가나 명동의류에 간 적은 있지만, 동대문은 흥정이 기본이라는 말에 아예 마음을 접었어요. 수입 음반을 구하려고 강변역의 테크노마트나 신천역에 갔고, 음반을 사려고 일본에 갈 때도 있었죠. 옷과 신발은 아주 가끔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에서 샀어요. 특히 가족이 자주 가던 신세계백화점이 익숙했어요. 무엇이든 백화점에서 사야 한다는 버릇도 그때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제 소비에는 호기심과 쓸 수 있는 돈, 그리고 인터넷 쇼핑이 없던 환경이 모두 영향을 줬어요. 요즘처럼 인스타그램을 보고 바로 살 수 있었다면 훨씬 일찍, 깊이 물욕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새로운 일을 직접 하기는 귀찮아하면서도 책과 영화에는 빠진 것도, 여러 경험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고요.
중학교 때는 이태원의 시스타 하우스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는 이대 앞의 비밥, 월드, 스파이더, 할리, 토마스나 압구정의 오일, 캠프에 갔고요. 춤과 음악을 만나는 곳으로는 이태원의 문나이트, 이대의 블루몽키스, 강남의 딥하우스도 기억나요. 쇼핑하던 동네와 춤을 추던 장소들이 같이 떠올라요.
춤과 음악은 옷차림을 어떻게 바꿨나요
어릴 때부터 이태원에서 힙합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지켜본 흐름에서는 미국 댄서들의 유행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고, 타미나 폴로 스포츠가 유행하기도 했죠. 돈을 벌면 옷부터 샀어요. 그때 산 옷과 신발이 아직 집에 있어요.
2000년대에 들어서는 명품이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댄서들도 구찌나 프라다, 돌체앤가바나를 입었죠. 당시 댄서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했는데, 월급을 받으면 명품을 사고 식사는 라면에 소주로 해결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춤과 음악, 패션이 소비의 중심에 있었어요.
빈티지 쇼핑에서 뜻밖의 가격을 만난 적도 있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구제옷을 사러 이대에 갔어요. 누가 입던 헌 옷이니까 저렴할 거라고 생각했죠. 한참 고른 다음 계산대에서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소심해서 사지 않겠다는 말을 못 했어요. 결국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낡은 옷을 한 보따리 사 들고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갖고 싶었지만 끝내 손에 넣지 못한 것도 있나요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쓰시던 모토롤라 마이크로택이 너무 갖고 싶었어요. 당연히 제 것을 사주지는 않으셨죠. 몰래 들고 학교에 가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전화를 걸기도 했어요. 대체 누구와 그렇게 통화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고3 때는 결국 018로 개통한 LG 싸이언 PCS폰을 샀는데, 모토롤라가 아니라 별 애착이 없었어요. 모토롤라 스타택은 대학생이 된 뒤에야 손에 넣었죠.
물건 이전에, 한창 외모에 관심을 가질 나이에 저를 너무 엄격하게 보고 제대로 꾸며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머리가 크니 뭘 입어도 별로일 거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봤거든요. 자신을 꾸미는 일이 새로운 장소에 가고 여러 경험을 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는데, 방에만 누워 있느라 그런 기회를 놓쳤던 것 같아요. 지금의 소비가 뒤늦게 시작된 관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대학생 때로 넓혀보면 당시 가장 좋은 DSLR 카메라를 갖고 싶었지만 사지 못했어요. 차선책으로 화질이 낮은 디지털카메라를 샀죠. 그런데 그 카메라가 훗날 다시 유행하는 걸 보니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더라고요.
무크의 맘보구두가 갖고 싶었어요. 그때 유행하던 구두였는데, 에어포스 1을 산 뒤에는 돈이 없어서 못 샀죠. 나중에 제 돈으로 롤렉스와 벤츠를 사고 싶다는 꿈은 또래 남자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갖고 있었어요.
갖고 싶다는 마음은 나중에 어떤 동력이 되었나요
학교 다닐 때부터 춤을 췄으니까 같은 팀에 성인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나중에는 자기 돈으로 벤츠와 롤렉스를 사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당시 춤추는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웠지만, 우리는 땀 흘려 돈을 번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저도 어른이 되면 제 돈으로 갖고 싶은 걸 사겠다고 생각했고요.
20대 초반에는 GQ나 에스콰이어를 봤는데, 어느 날 잡지 맨 뒷장 광고에 하얀 시계가 있는 거예요. 샤넬 J12였어요. 제 피부가 까만 편이라 그 시계를 차면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백화점에 가서 직접 차보고 결국 샀어요. 지금도 집에 있고, 제가 가장 아끼는 시계가 됐어요.
저는 잡지를 보면서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 그걸 오리고 잘라 다이어리에 붙였어요. 좋아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잔뜩 붙여놓고 언젠가는 이것을 갖는 순간이 오겠지 생각했죠.
그렇게 스크랩하던 행위가 결국 제 직업으로 이어졌어요. 결핍이 동력이 됐다는 말을 저도 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 찾아보고 모으던 시간이 지금의 일과 연결돼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첫 소비의 기억이 모두 근사한 물건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안 어울리던 모자도 있고, 흥정이 무서워 다시 가지 않은 지하상가도 있다. 그래도 다이어리를 펼치거나 오래된 운동화를 꺼내면, 그때 무엇을 원했던 사람인지는 다시 보인다. 세 사람의 첫 대화는 그 서로 다른 출발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편집 안내
이 글은 「근로소비자」 1화의 영상 대화에 박은성·유상훈·빽가의 사전 답변을 더한 확장 인터뷰입니다. 본문 답변을 보강하고, 영상에 담기지 않은 별도 사례와 질문은 ‘영상에서 다 못한 이야기’에 모았습니다. 문장은 읽기 좋게 다듬었으며 실제 발언을 그대로 옮긴 속기록은 아닙니다.
채널 소개
「쓴만큼」은 돈과 시간을 쓴 만큼 그 사람이 보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채널입니다. 첫 시리즈 「근로소비자」는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사람들의 소비와 삶을 이야기합니다.